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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연
브로치
활연
“결혼 축하해요.”
이 결혼이 누구 결혼인지 잊은 듯 번듯하게 턱시도를 입은 활이 사무적인 웃음을 띄운다. 잠시 벽에 기대어 삐딱하게 지켜보는가 싶더니 이내 가까이 다가가 훑듯이 연의 자태를 감상한다. 계속 변화가 없을 것 같던 표정이 살짝 몸을 숙여 손등에 입을 맞출 때 잠시 굳어진다. 정작 그 손의 주인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왜 나랑 결혼하고 싶었어요? 이활씨는, 이런 쪽으로는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백지한씨도 아니고.”
“그래도 결혼식인데 다른 남자 이름은 삼켜야죠.”
“초대는 했어요? 백지한씨랑 유예씨요.”
활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다른 남자의 이름이, 그것도 두 남자의 이름이 한꺼번에 튀어나오자 입술로 뱉는 이름들을 삼켰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가늘게 뜬 눈이 마주치던 순간이 두 사람의 첫키스였다. 제법 오래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다시 원래의 거리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흐트러진 연의 머리를 정리해준다.
“웃어요.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하던데, 계속 그렇게 있을 거예요? 당신이 그랬잖아요. 결혼은 꼭 여기, 초우성당에서하고 싶다고.”
“그렇게 저를 지켜… 아니, 훔쳐봤으면서, 아직도 저를 몰라요? 가식 같은 거, 부릴 줄 모르거든요.”
“뭘 그렇게 복잡하게 말해요. 그냥, 솔직한 거죠. 그래서 다행이에요. 당신이 제 앞에서도 솔직하기만 한 사람이라서.”
부러 거슬릴 만한 단어들에 힘을 줘서 말하는 쪽도, 동요 없이 제 할 말을 다 하는 쪽도 신랑, 신부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활이 언제 말에 날을 품었냐는 듯 부드러운 손길로 면사포 위를 쓸어내리자 잠시 흩날리듯 면사포가 살랑거렸다.
“그렇게 머리 흔들면, 다 흐트러지잖아요. 애써 고른 건데.”
“당신이 고른 거죠. 드레스도, 면사포도. 따지고 보면 이 성당도요.”
“이 결혼, 깰 수 있는 방법은… 연씨가 제일 잘 알잖아요. 그러라고 설화를 쥐어줬는데, 기어이 여기서 마주 보고 있는 게 과연 제 뜻이기만 할까요?”
내내 무표정을 유지하던 연의 표정에 처음으로 살기가 서렸다. 그러자 의외라는 듯 눈썹을 한 번 들썩거린 활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대기실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무슨 일이죠?”
“아, 이제 곧 입장이에요! 밖으로 이동해주세요.”
“들었죠? 조심해서 일어나요.”
활이 내민 손을 무시하고 복도를 돌아 밖으로 나오자 더 좋을 수 없이 화창한 햇살이 드레스 위로 내렸다.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흩날리며 문 앞에 도착하고서야 비로소 손이 잡혔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손을 내려 보자 그 위로 활의 입술이 닿는다.
“입장은,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누가 아니래요.”
문이 열리고 보이는 얼마 없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얼굴들이었다. 주례를 보는 신부 말고는, 설화를 가진 이들만이 하객석을 채웠다. 죄다 같은 표정 속에 활의 얼굴에만 옅은 미소가 띄었다.
“드디어, 가져보네요.”
“그렇게 생각해요?”
뻔한 주례가 읊어지는 동안 모두의 시선은 한 사람만을 향했다. 곧 흩어지는 언약의 말들이 사라지고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눈에 담겼다. 활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약지에 반지를 끼우고는 반지 위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요. 제 운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래요. 저도 사랑해요.”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로 햇빛이 오묘하게 두 사람을 비췄다. 보이기에 아주 찬란하고, 들리기에 아주 서늘한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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